- 2021/10/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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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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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숙박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일주일 단위로 입실과 퇴실을 번복하며 살아간다. 포스터에 그려진 보라색 건물과 그 위에 뜬 무지개, 그 밑에서 발랄하게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크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포스터에 쓰여진 문구는 더 심하다. '2018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 '디즈니 월드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라는 문구는 사기다. 이 영화는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 안에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회 구조 속에서 발버둥치는 어른들이 있고 그 안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이 영화에는 아이들만 등장하지 않는다. 어른의 모습을 한 아이도 등장한다. 똑같은 형태로 어른의 말투를 쓰는 아이도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무니가 그런 아이다. 무니의 말투는 엄마의 말투와 똑같다. 무니의 엄마, 핼리와 무니의 정신연령은 똑같다. 열악한 환경에서 두 사람은 거의 쌍둥이가 됐다. 큰 어른과 작은 어른이, 아니면 큰 어린아이와 작은 어린아이가 서로 의지하면 살아가는 형태다.
무니가 어린아이만이 가능한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며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핼리는 직면해야할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숨는다. 성인에게 상상의 세계는 더 이상 힘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핼리는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상대방에게 모욕주기와 거짓말로 자신의 세계를 지킨다. 폭력도 불사한다. 세상을 향한 분노가 자신을 지키는 무기다. 무니가 어린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특기인 상상으로 자신의 세계를 지킨다면, 핼리를 지탱시키는 힘은 바로 그런 데 있다.
무니의 세계는 다른 두 친구들이 공유한다. 하지만 핼리의 세계에는 공유자가 없다. 그래서 더 외롭고 불안정한 사람은 핼리다. 유일한 친구였던 애슐리도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다. 애슐리 역시 식당 종업원으로 여유없이 살아가고 훌륭한 엄마는 아니지만 그녀에게는 최소한 용납되지 않는 선이 있다. 핼리는 그 선까지 위반한 사람이다. 애슐리가 볼 때, 핼리는 어른으로서, 또한 부모로서 최소한의 책임감과 도덕의식이 없다.
핼리 곁에는 무니뿐이다. 아동국에서 무니를 데리러온다는 것은 핼리에게는 단순히 아이를 뺏긴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녀 세계의 유일한 공유자를 뺏어가는 일이며 그녀에게는 완전한 소외를 뜻한다. 아동국으로 간다는 것은 무니에게도 고립을 뜻한다. 무니에게 절망적인 것은 엄마와 이별보다는 단짝친구와의 기약없는 헤어짐이며 무니가 구축해온 세계의 무너짐이다.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무니가 유일하게 아이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어른들을 조롱하고 어떻게 해야 엄마가 물건을 팔 수 있는지 잘 알고 협력하던 무니는 그제서야 두려움을 아는 어린 아이로 되돌아간다. 무니의 단짝 친구, 젠시는 무니의 눈물에서 절망을 본다. 젠시는 무니의 절망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두 아이가 손을 잡고 뛰어가는 엔딩 시퀀스는 당황스러운 만큼 여러 감정을 교차시킨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에 디즈니월드의 성이 보인다. 그곳이야 말로 진짜 마법의 성, 즉 매직 캐슬처럼 보인다. 매직 캐슬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모텔인 가짜 성이 아닌 진짜 매직 캐슬로 그들은 달려간다. 수많은 어른들과 차량 사이를 헤치면서 작은 아이들을 달려간다.
그들은 곧 그곳 역시 진짜 마법의 성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앞에 놓인 디즈니월드의 성은 매직캐슬 모텔 위로 솟아있던 무지개만큼 현실과 동떨어져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달려가고 있다. 달려가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 무니는 친구들과 놀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이 쓰러진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쓰러진 상태에서도 계속 자라기 때문이야."라고.
달려가는 한 그들은 계속 자랄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어른들 역시 모두 아픈 사람들이다. 가장 현명하게 보이는 매직 캐슬의 매니저, 바비(웰렘 데포 분) 역시 어머니와 관계에서 엄청난 상처를 간직하고 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상세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다. 관광객이 아니면서 관광지의 모텔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안정된 미래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머무르다 가야할 장소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다. 그들은 무니와 젠시처럼 마법의 성을 향해 달려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가짜일지라도 엔딩 시퀀스에서 보이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들은 흉내조차 낼 수가 없을 것이다.
- 2018/04/2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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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의 두번째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첫번째 녹음과는 달리 잡음 하나 없이 깨끗이 잡아낸 녹음이라 생생하다. 찢어지는 목소리로 일관된 첫번째 파일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첫번째 파일의 목소리는 그냥 떼쓰는 어린 아이의 울부짖음에 불과했다.
인상적인 것은 이 두번째 파일이었다.
이 파일을 들으면서 나는 내용보다는 조현민이 발음하는 방식에 매우 끌렸다.
이 파일의 목소리는 매우 낭랑한 편이다. 충격적인 것은 뭔가를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소음이나 반말, 욕지거리보다는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즐기는 듯한 독특한 발음의 방식과 억양에 있었다.
단어를 잘근잘근 씹어대며 짓이기듯한 발음이 매우 특이하고 중독성이 있어서 여러번 듣게 만든다.
'맞아요, 안 맞아요?'라고 할 때 이를 바득바득 가는 듯한 발음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맞즈아요, 안 맞즈아요.' 비슷하다.
'이 따위로 갖고와?'라고 할 때 '따위'를 '뜨아이'라고 잔뜩 눌러 발음한다.
'징계해'라고 말할 때 '징'에 힘을 잔뜩 넣는다. 이응을 눌러 발음해서 '즈잉'으로 들린다.
조현민은 분에 못이기는 듯 입 근육에 잔뜩 힘을 주면서 힘들게 단어들을 분만해냈다. 진통 속에서 애가 나오는 듯이.
마치 배우가 분에 못 이기는 연기를 할 때 억지로 과장된 발음을 하듯이 부자연스럽게 과장돼있다.
똥을 누면서 아이 낳는 것처럼 지나치게 심각한 느낌이랄까.
"어딜, 어디서."라고 말할 때 특히 소름이 돋는다.
자세히 들어보면 "오어딜, 오어디서어어어"라고 들린다. '어어'할 때 억양이 덩실 춤을 춘다.
이건 상황을 즐기는 목소리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취해 있었다. 남들을 짓누르는 자신의 목소리에 중독돼 있었다.
나는 이 목소리들을 한번에 연이어서 듣고 싶었으나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기자의 설명 때문에 끊겨서 짜증스러웠다. 기자는 왜 자꾸 중간에 설명을 삽입하는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것들을.
사이코 스릴러 영화보다 흥미로운 이 대사들을 왜 방해하느냐말이다.
내가 그 앞에 있었다면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을 것 같다.
이건 너무 어설픈 연기야. 너무 어설퍼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상황과 너무 어울리지 않게 과장돼 있어.
잔뜩 허영심만 들어간 연기자가 자기 연기에 취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를 하는 것 같잖아.
수준도 맞추지 못한 자신의 작품을 보고 스스로 감탄하는 사람을 봤을 때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 같은 거 있잖아.
흐흐흐흑. 이런 생각으로 나는 이를 악물며 웃음을 참았을 것 같다.
뱃속이 간지러울 정도로 웃겨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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