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엄마의 바다란 드라마가 있었다. 고소영이란 탤런트가 처음 출연해 뜨기 시작했고, 고현정과 최민수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다. 엄마역으론 김혜자가 출연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귀부인처럼 살아왔던 엄마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알거지 신세가 된다. 우아함과 고상함을 유지하고 돈 쓸 줄 밖에 몰랐던 마나님이 그대로 생활 전선에 노출된 것이다. 얼마나 가혹한 현실인가.
나이 든 사람에게 찾아온 변화란 벌과 같은 것이다.
어린 사람들은 항상 신선한 변화를 꿈꾸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생활에 변화가 올까봐 두려워한다.
그 뒤로 엄마는 나이 50에 바다를 보았다라는 연극도 나왔다. 연극을 보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다가 그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세상을 보게 됐다는 뜻으로 난 해석했다.
그 당시 내 나이는 50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아니, 50이란 나이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나이였다. 그래서 그 나이에 인생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여자들의 처지가 참 불행하고 한심해보였다.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닌가.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이미 나이 50을 넘겼는데, 자신은 절대 50살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고 했다.
세월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린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청춘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실은 믿기지 않는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건 눈 앞의 사실일 뿐, 과거도 미래도 아니다.
참으로 세월은 빠르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책임질 때가 됐다는 것이다. 잘 살아왔든, 못 살아왔든, 부정하고 싶든, 매달리고 싶든,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다. 이젠 고치고 점수를 만회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놓쳤던 기회들에게 대해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할 나이인 것이다.
평균 수명이 80세인 시대라고들 하지만 생산적인 나이는 그보다 훨씬 짧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제 이런 얘기들을 나눈다.
어린 시절의 우린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왜 젊은 시절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등등...
아직은 에너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될까.
더 나이가 들면 이젠 그런 얘기조차도 하지 않게 될 날이 올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 숫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젊음...참 좋은 거다. 하지만 정작 젊은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고 괴롭다. 제대로 태워지지 않는 젊음은 괴로움만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었을 때 비로소 예전에 내가 젊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난 다르게 살았을 것 같지 않다.
그 때도 난 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나름대로 고민했고 발버둥쳤기 때문이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 내 앞에 있을까.
아버지가 임종을 눈 앞에 뒀을 때, 담당의사가 했던 말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행복했던 기억만 떠올리세요.' 행복했던 기억들, 아버지에겐 과연 그런 기억들이 많이 있었을까...
죽음을 눈 앞에 둔 채, 살아온 날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는 것. 인생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태그 : 엄마의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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