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그리고 카모메 식당 영화, 드라마 이야기





오기나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들. 이 두 영화는 한 배에서 나온 형제답게 닮아 있다. 등장인물들도 두 명이 겹쳐진다. 그래서 마치 속편처럼 느껴지는 영화다. 지구 상의 시간들은 동일하지 않다. 한여름 소나기처럼 후두둑 지나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정지한 듯 천천히 흐르는 곳도 있다. 바쁘게 살수록 시간은 자꾸만 도망간다. 시간을 잡아두는 방법은 모른 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 감각을 깨워주는 것들을 덮어둬야 한다. 핸드폰도 꺼두고 달력도 가려두고 시계도 보지 말자. 시계가 없어도 아침인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있다. 이 두 영화는 선전문구처럼 느리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영화다.

'안경'의 배경은 바닷가에 있는 어느 모텔...영화의 배경도 무척 단조롭다. 바닷가와 모텔을 번갈아 비춰줄 뿐이다. 연극으로 만들어도 될 것처럼 단순한 배경이다. 인간들간의 관계도 복잡하지 않다. 그냥 알려진 이유 없이 그곳을 찾았을 뿐이다. 서로에게 궁금증을 느끼지만 사람들은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사람들이 왜 그곳을 찾는지,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서로의 물음에 동문서답으로, 혹은 '왜, 그러면 안 돼요?'라는 되물음으로 답한다.  '카모메 식당'에서도 일본인 사치에가 굳이 생소한 핀란드까지 와서 식당을 차린 이유에 대해선 나오지 않는다. 미도리 역시 그냥 눈감고 세계지도를 찍었다가 걸린 게 핀란드라서 왔다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카모메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고 외적인 조건에선 공통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일본인이란 점, 그리고 안경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안경을 쓰고 있다는 단순한 공통점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낸다. 

'안경'에서 사쿠라는 매년 봄마다 그곳에 찾아와서 빙수를 판다. 사람들은 보지 않아도 그녀가 돌아 왔다는 걸 느낀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은 사색이다. 여기서 사색이라는 것은 마냥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바다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말이 없어진다. 바다는 그렇게 사람들의 말을 흡수해버린다.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는 바다이다.

안경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늘 바다를 향해 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한 사람들의 얼굴은 바다만큼 고요하다. 사람들의 얼굴이란 바라보는 것의 반영이다. 카메라가 바다를 담아내듯 사람들의 얼굴은 바다를 닮아간다.     

핀란드의 헬싱키가 배경인 '카모메 식당'에서도 바다가 등장한다. 갈매기라는 뜻의 식당을 차린 일본인 사치에 역시 항구 시장에서 장을 보고 취미활동으로 수영을 한다. 물론 수영장에서 하는 것이지만 수영장 씬과 석양 씬이 이어진다. 그래서 마치 사치에가 석양을 향해 헤엄쳐 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영장 끝까지 갔을 때 수영은 끝나듯이 인생의 수영은 죽음과 만나는 순간 끝나게 된다. 하지만 수영장 끝까지 가는 게 수영을 하는 목적이 아니듯이 우린 죽기 위해 살진 않는다. 살다보면 죽음이라는 순간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수영을 한다는 것이다.
 
'카모메 식당'에선 마사코는 가방을 잃어버려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매일 항공사에 전화해 가방을 찾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막상 기다리던 가방을 찾았을 때도 그녀는 떠나지 않는다. 가방을 열었을 때, 그 안엔 자신의 물건 대신 황금빛 버섯으로 가득차 있는 걸 발견한다. 그 버섯은 자신이 근처 숲 속을 거닐면서 따모았던 버섯들이었다. 그녀가 기다렸던 것은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행을 하는 데 자신의 물건들은 필요하지 않다. 자신의 것을 버리는 게 필요한 것이다. '안경'에서도 타에코는 결국 끌고 다니기에 너무 버거운 자신의 큰 가방을 버린다. 봄마다 그곳을 찾는 마사코는 잠시 수퍼에 가듯이 가벼운 차림으로 온다는 하루나의 말은 타에코의 여행짐이 너무 무겁다는 걸 지적해준다.  

두 영화에서 사람들은 그곳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요리를 하면서, '안경'에서는 사색과 우스꽝스러워보이는 체조를 하면서 말없이 공통점들을 발견해간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마음을 담은 사치에의 요리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하고 '안경'에서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타에코가 결국 코믹한 체조 행사에 참여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동작을 한다는 건 자신만의 아집을 버리는 일이다.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동화돼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갈 때는 그냥 말없이 떠나버리면 된다. 떠나는 사람은 언제 오리라는 약속도 하지 않고 보내는 사람도 붙잡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느낌으로 알고 있다.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카모메 식당'에선 짐을 찾고도 그곳에 있기로 결정한 마사코, 여행 중에 그곳에 머무르게 된 미도리, 그리고 핀란드란 타국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사치에, 그들의 만남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암시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경'에서도 매년 맞이하는 그들의 만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언젠가 그 만남이 끝나게되더라도 그들은 자연스럽게 헤어짐을 받아들이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안경'에선 그들을 모이게 하는 힘은 그곳까지 찾아와서 그곳에서 지낼 능력이다. 즉 이 영화에서 나온 단어를 빌자면 그들은 그런 재능을 지닌 사람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시간을 앞질러 가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게 시간 속에 그대로 묻히는 걸 그들은 사색이라고 부른다. 각자의 사색을 통해 서로에게서 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은 사이에 있는 공간을 서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는 여유는 바로 거기서 나온다. 사람은 원래 혼자였다는 걸 잊지 않는 한 타인에 대한 집착이란 없다. '카모메 식당'에서 미도리는 사치에에게 묻는다. 우리가 떠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늘 상냥한 사치에는 이렇게 말한다. 식당은 원래 혼자했던 것이니 괜찮다고. 

혼자 사는 삶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식당과 모텔은 손님이 있어야 의미가 있듯이 사람들은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   

덧글

  • smirea 2007/12/29 23:35 # 삭제 답글

    너무나 멋진 영화평을 이제야 봤어요.

    안경은 아직 못봤지만, 카모메식당에 저렇게 멋진 의미들이 함축된 줄은 모르고 봤어요. 그냥 삶은 함께해서 더 의미가 있는 거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본 영화였는데, 참 좋은 영화였군요.

    써주신 평을 보니, 영화가 더 의미있게 다가오네요. 잘봤어요.^^
  • 아그네스 2007/12/30 09:09 # 답글

    기회가 되면 안경도 보세요. 카모메 식당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예요~
  • 우주래빗 2008/01/29 02:07 # 답글

    오오, 훌륭한 이글루를 발견해서 넘 기쁘네요! 글들이 하나같이 어찌나 주옥같은지 *^^* 잘 읽고 갑니다. 안경을 보고 글을 썼더니 이글루에서 자동으로 연관글을 찾아줬어요. ^^ 종종 들르겠습니다.
  • 아그네스 2008/01/29 12:33 # 답글

    부끄럽네요...요새 바빠서 포스팅도 잘 못 하는데... 격려해주시니 앞으로 자주 올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우주래빗 2008/01/30 00:01 # 답글

    앗, 저 혹시 이글루 링크해도 될까요 ^///^
  • 아그네스 2008/01/30 00:48 # 답글

    영광임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