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가면'인가 영화, 드라마 이야기

영화는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진행과 화면, 그리고 반전들, 흥미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면은 성공을 거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가면이라는 제목이 과연 이 영화에 어울리는가.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난 그런 생각을 했다. 가면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상상하게 되는 인간들의 많은 이중성들이 이 영화엔 별로 담겨 있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면의 색깔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동성애라는 코드. 자신의 동성애적인 성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가면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살인과 수사, 추적 등은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세 차례의 반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단순해보인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주제는 동성애가 아니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진지하지 않다. 초반부에선 범인이 누군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후반부에선 반전을 위해서 동성애의 색깔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동성애적 기질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여성적인 예쁘장한 용모를 가지고 태어난 남자가 여자로서 길들어진 경우, 동성애를 즐기는 양성애자, 남성들뿐인 환경이란 이유로 가장 여성스런 남성에게서 대체 만족을 지향하는 경우, 특별한 한 남자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다른 남자의 경우. 

마지막의 경우가  형사 조경윤(김강우 분)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제부터 싹텄는지, 그게 남녀간의 사랑과 똑같은 색깔을 갖는 사랑인지, 연민과 동정심이 사랑 비슷한 감정으로 변한 것인지, 외모는 남자지만 그 안에 있는 여성성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이 복합된 것인지 구분짓기는 힘들다. 그런 사람을 동성애자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그의 가슴 속으로 들어온 사람이 하필 여성적인 외모와 성향을 지닌 남자였다는 데서 일이 꼬이게 된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특정한 캐릭터, 윤서란 인물이지, 윤서가 남자라는 사실이 아니다. 상대가 동성이기 때문에 끌리는 동성애자와는 구분돼야 한다. 그래서 김강우가 쓴 가면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동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괴롭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 너무나 닮은 여성을 찾아냈을 때 그의 오랜 갈등은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의심스러웠던 자신의 성정체성이 그 순간 정당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가짜였다는 것이 곧 밝혀진다.

벗고 싶지 않은 가면이 흘러내리는 순간, 결국 두 사람은 돌아오지 못할 곳을 택한다. 그들을 파멸시킨 가면은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자신의 가면? 최후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차수진이란 인물의 가면? 아니면 약자를 귀퉁이로 몰아붙인 많은 인간들이 쓴 가면? 

어떤 게 가면이고 진짜 얼굴인지 이 영화에선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출연 인물들 속에서 그 두 개의 얼굴은 묘하게 섞여 있다. 여자와 남자 동시에 성관계를 갖는 양성애자의 이중성, 남동생을 화장시키는 누나의 이중성, 남자친구에 대한 애정을 가슴에 담은 채 그를 닮은 여자친구와 성행위를 갖는 조경윤의 이중성. (그는 어린 시절 윤서에게서 받은 목걸이를 계속 걸고 있었다) 범인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 수 없는 중간지대의 성이라는 것 역시 그 이중성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 영화는 성과 관련된 자아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것은 가면일 수도 진짜 모습일 수도 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기 전까지 유아기의 모든 인간들은 중성적이다. 그리고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성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한 뒤에도 동성애적인 기질은 누구나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비율이다. 어느 쪽에 어느만큼 더 치우치느냐에 따라 동성애자가 발생한다. 여자의 눈으로 볼 때, 여성보다 성격이 더 남자답고 멋지게 느껴지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남자의 경우엔 어떤 여자보다 더 섹시하게 다가오는 남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겐 그런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감정에 집착하게 될 때, 성 정체성에 혼란이 오게 되고, 자신의 전반적인 정체성을 뒤흔들어놓는다. 정체성이 없는 인간은 마치 영혼을 저당잡힌 것처럼 허깨비가 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는 극한적인 경우를 소재로 채택한 스릴러물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씬들은 초반부에 있었다. 김강우와 이수경의 정사씬에 섞인 여가수의 노래하는 씬, 뭔가 사건이 터질 듯한, 혹은 곧 섹스의 절정에 이를 듯한, 바로 그 직전의 긴장감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오는 모든 것을 포기한 두 사람의 수중 키스씬보다 더 압도적인 분위기다.    


덧글

  • cipher 2008/01/17 20:46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머지 느낌은 기회 있을 때에....^^
  • 아그네스 2008/01/18 13:00 # 답글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Yurie 2010/07/19 06:17 # 삭제 답글

    영화 가면, 이제 몇년지난 작품이고.. 우연히 상세검색하다가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최근 엇그제 김강우씨가 결혼하고 그 부인부탁인지 웹, 보드에서 타이틀을 좀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듯하군요
    아직 연기자로 어필이적었던 이수경씨와의 초유로맨스가 충격적이긴했는데
    강우씨나 수경씨나 비교적 너무 작품성깊게 들어가면 안좋은 이미지인거 같습니다.

    두분다 서민적이고 착한이미지라.. 강렬한 작품에선 때론 독이되는듯..

    하여튼 블로거님말씀대로 영화가끝날때까지 쉴새없이 빠져들던 스피드 전개, 매우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도 독특했기에 많은 인상이 남긴했네요

    성정체성에 관한 정도의 차이비율... 참 좋은 비교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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