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 스크린으로 만나는 즐거움 영화, 드라마 이야기


인기있는 티비 드라마를 영화를 옮긴다는 건 일단 안전망을 바닥에 깔아놓고 시작하는 게임이다. 큰 기대 없이도 즐길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가 더 들었지만 여전히 용감 발랄한 모습을 간직한 네 여인들이 질러대는 함성만으로도 눈가에 살짝 웃음기를 머금게 만든다. 이제 이 영화로 캐리까지 결혼을 했으니 유부녀의 비율은 과반을 넘었고, 프리섹스주의자인 사만다만 화련한 싱글을 고집하게 된 셈이다.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현상이지만 조금 섭섭한 감도 있다. 결국 인간은 쌍으로 사는 걸 지향하는 존재인가. 

섹스 앤 더 시티는 남성보다는 여성팬들이 많은 드라마다. 그만그만한 재능으로 살아가는 일반적인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건드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캐리는 명품족이지만 글을 쓰는 작가라는 설정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닥 지성적인 매거진이라곤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색깔을 담은 글을 쓰면서 옷장이 부족할만큼 명품을 살 수 있을만한 경제력을 갖추었고 2번의 이혼경력이 있긴 하지만 부자 남친까지 뒀으니 여성들이 꿈꾸는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곳에 올인하지 않고 적당히 자존심을 지키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여성들은 일반적인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 경제적 능력, 섹스, 어느 한 가지도 포기하고 싶지 않는 것이다.

섹스에 관해 여성적인 관점에서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점이 섹스 앤 시티 드라마의 강점이었다. 여성들이 섹스에 대해서 좋은 걸 좋다고 싫은 걸 싫다고 할 수 있고, 어떤 게 좋은 건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드라마는 별로 없었다. 여성이 섹스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태도 또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샀다. 특히 극중 캐릭터 사만다는 이런 점에서 지존이다. 그녀에게 삶의 가장 큰 활력소는 섹스이다. 그리고 표현방법도 무척 노골적이다. 

요새 이런 개방적인 바람을 타고 대중 언론매체에서도 섹스에 관한 담론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최근엔 이혼녀들이 이름과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섹스에 관한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이 난다. 섹스 앤 시티처럼 법적인 처녀들까지 한 몫 낄만큼 개방적인 사회는 아니지만 우리도 이젠 유부녀, 이혼녀 등, 섹스에 대해 허용을 받은 위치에 있는 여성들은 이제 대담하게 자신의 성생활과 만족도 등을 대놓고 얘기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실감 나기로 말하자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게 더 강도가 높아야 하는데 영화나 드라마 캐릭터들의 솔직한 성 담론이 내겐 더 유쾌하고 더 큰 공감을 주니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캐릭터라는 한 꺼플의 위장이 내게 주는 위안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진실인지 상상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때가 더 호기심과 흥분감을 주는 법이다. 숨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몇 년전 한 탤런트가 자신의 성경험을 그대로 고백한 서적이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솔직한 건지 대담한 건지 모르겠지만 난 그런 걸  솔직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맨 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을 솔직하다고 말할 순 없다.  
                          
섹스 앤 시티에서 사만다의 행각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보일만큼 때론 노골적이고 대담해보이긴 해도 난 유쾌하게 즐길 수가 있다. 영화라는 안전막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섹스 앤 시티에서 섹스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캐릭터들은 없다. 섹스에 대한 적절한 만족이 없으면 여주인공들은 우울하다. 섹스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섹스에 목숨 걸진 않는다. 수다스럽고, 약간 속물스럽고, 약간 저질스러운 이 캐릭터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들이 평범하다는 데 있다. 평범한 여성들이 가진 수많은 욕망들 중 일부분들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평범하다. 그들이 가진 윤리와 도덕성이 현실의 우리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품 가방을 얻기 위해 하룻밤 잠자리를 허용하지도 않고 단지 섹시한 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남성의 품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는 걸 알면서 상대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상대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이다. 수많은 명품들이 등장하고 호화로운 생활과 아파트가 눈을 돌아가게 만들지만 한 쪽 눈을 감아줄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취미가 내겐 없는 것 같다.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건 내 속마음을 들키는 것처럼 불쾌한 일이다. 아는 듯이 모르는 듯이 그렇게 살고 싶다. 우리의 성적 상상력은 많은 영화들이 충족시켜주고 있으니까.

피부가 탱탱한 젊고 예쁜 여배우들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무척 실망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시 당하고 경멸받는 게 현대 사회의 숨겨진 일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이가 드는 덴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언젠간 자신도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욕망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현실과 대비해서 판단하는 능력이 발달하는 것일 뿐이다. 

섹시하다는 말은 좋은 말이다. 그건 생명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의 적당히 발달된 근육과 튀어나온 힘줄, 여성의 부드러운 가슴과 엉덩이의 곡선은 생명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건 뭐든 섹시하다. 그래서 섹시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뽐내는 권상우나 송승헌의 잘 만들어진 근육질 몸, 한채영의 보일듯말듯한 큰 가슴과 엉덩이는 그닥 섹시하지가 않다. 생산성이 느껴지지 않아서이다. 보여주기 위한 섹시는 별로다.

일에 몰두하는 남자들의 옷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근육이야말로 섹시함의 극치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섹스 앤 더 시티는 가벼운 영화다. 가벼운 영화는 가볍게 봐주자는 얘기. 가슴 짠한 감동을 기대하거나 도덕적인 잣대를 갖다 대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이젠 중년에 들어선 사총사들 특유의 리듬을 편하게 따라가주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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