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뿔났다...가출은 엄마들의 꿈? 영화, 드라마 이야기

 
김수현 작가가 왜 이 드라마의 제목을 엄마가 뿔났다로 정했는지 그 이유가 이제 드러난다. 김수현의 장점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이런 데 있다. 몇 개월간에 걸친 드라마일지라도 그 주제를 제목 하나로 요약할 줄 아는 능력이다.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자신이 애초에 의도했던 바를 놓치지 않는 점을 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유명한 만큼 비난도 많이 받는 작가지만 남들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작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 도가 지나칠 때도 있다. 극중 캐릭터들의 다양한 생각들 중 하나라고 해도, 예전 어떤 드라마에서 나왔던 인도에 대한 폄하 발언이나, 세탁소에 대한 지나치게 사적인 비뚤어진 발언들이 가끔 거슬리긴 해도, 김수현 드라마로 인해 대중이 덕을 본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김수현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이들은 참 말을 잘 한다. 즉 캐릭터들 각각이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잘 대변한다. 그 중 한 캐릭터에 자신을 비춰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음 속에 품고 밖으로 꺼내놓지 못 한 말들이 극중 캐릭터들 입을 통해 나오는 걸 보고 후련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때론 한자의 입장이 되보고, 때론 영수의 입장이, 때론 고은아의 입장이 돼보게 만든다. 모든 캐릭터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그걸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이 김수현이 가진 힘이다. 

이 드라마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어머니도 하나의 주체로서 묘사하고 있다. 바다처럼 모든 걸 포용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자식을 향해, 자존심을 내세우고 자신의 기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들의 비난에 대해서도 맘대로 생각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은 어머니가 진노하셨다가 아니라 엄마가 뿔났다이다. 엄마도 애처럼 떼를 쓸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몰랐을 것이다.  

모든 걸 인내하고 감수하면서 가정을 지켜내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것이 훌륭한 어머니의 표본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는 엄마는 속없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하지만 딸 아들 구별하지 않고 교육에 있는 대로 투자하고, 여자의 능력이 남자보다 뛰어난 경우도 허다한 현대 사회에서 그런 전통적인 어머니 상은 이제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시부모나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자는 이제 없을 것이다. 신세대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결혼이란 틀에 갇혀 부당한 대우를 인내하는 여자들은 없어질 것이다. 결혼이 여성들의 생존에 필수조건인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의 경우는 다르다. 공부를 많이 해 아는 게 많다 해도, 경제력을 충분히 갖췄다 해도 자신이 만든 틀에 자기가 갇힐 수 있다. 그게 바로 자식이다. 자식에게 강한 엄마는 없다. 모든 엄마는 자식에게 약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죽음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게 바로 어미다. 자식이 아프면 어미는 더 아프다. 남자들은 비록 아비라고 해도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이 끈질긴 인연을 결코 이해하지 못 한다. 모든 여성은 엄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성성의 포용력은 거기서 비롯된다. 아빠의 가출과 엄마의 가출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한자는 시한적이긴 하지만 그런 엄마의 의무까지도 잊길 원한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쉬고 싶다는 게 이유다. 보기에 따라선 팔자가 늘어진 여자의 투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한자 캐릭터의 이런 실정을 통해, 우리는 어미, 엄마, 어머니라는 바뀔 수 없는 운명의 삶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됐다.

아내는 뿔났다, 며느리는 뿔났다가 아니라, 엄마는 뿔났다라는 제목을 택한 건 드라마에서 묘사하고 싶은 대상이 바로 자식이 있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비록 성인이 돼 다 출가했다지만 금쪽 같은 자식들의 만류와 비난을 무시하고 한자는 집은 나간다. 자라온 환경과 세대로 본다면 난 영수쪽에 더 가깝지만 한자로 인해 대리만족의 기쁨을 느끼는 것도 이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아들 녀석은 그렇다고 쳐도 엄마의 가출에 강하게 반기를 드는 영수의 경우는 좀 얄밉다.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서, 그리고 많이 배운 여자로서 이해심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같은 여자지만 자신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영수의 태도도 엄마의 가출 동기에 한 몫 했을 것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서 행복해한다. 아침에 실컷 자도 되고 자식과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리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일으킬 필요도 없다. 마음껏 책을 보다가 졸리면 마음대로 잘 수도 있고 밖에 외출했다가 밤늦게 들어와도 된다. 아니 며칠씩 집을 비워도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식사 때를 넘겨도 불평하는 이도 없다. 저녁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도 마음대로 보러 갈 수 있고, 지방에서 열리는 영화제까지도 꿈꿔볼 수 있다. 경치 좋은 곳에 갔다가 필이 통하면 근처에 방을 잡고 하루쯤 바깥 풍경에 빠져 지내볼 수도 있다. 하루 종일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남의 서비스를 받으며 지낼 수도 있다.

이런 생활을 한 번이라도 꿈꿔보지 않은 엄마는 없을 것이다. 어리면 어린 대로 크면 큰 대로 자식들은 늘 요구가 많다. 아쉬울 땐 늘 엄마를 찾는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부르는 소리는 못 들은 척 무시할 수 있지만 자식이 부르는 소리엔 그럴 수가 없다. 자식이 불편을 느끼는데 마음 편하게 자기 할 일만 할 수 있는 엄마는 없다. 그러니 엄마는 연속적인 일을 하기가 힘들다. 단 하룻밤 나가 자는 데도 자식들은 연신 전화벨을 울려낸다. 또 자식이 자기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고 해도 정을 끊을 수도 없다. 

경제력이 뒷받침해주는 고은아의 경우라면 가출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지내는 그녀도 자식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을 썩인다. 이젠 남편까지 반기를 들고 나섰지만.

자식을 키우고 기쁨을 느끼면서도 엄마는 마치 바람 피는 여자처럼 늘 마음 한 켠에서 독립을 꿈꾸며 설레인다. 언젠간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날 일이 있겠지. 하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엄마는 당황스럽다.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자식에게 엄마의 간섭은 귀찮고 짜증만 날 뿐이다. 바쁜 상황에 있는 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퇴짜를 맞는 한자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식들이 엄마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도 아니다. 아쉬울 땐 꼭 엄마를 찾는다. 그리고 엄마가 자기를 불편하게 하는 건 싫어한다. 영수가 엄마의 가출을 펄펄 뛰며 반대하는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책임을 어머니가 맡아주길 바래서다. 자신의 상황이 계속 편하게 유지되려면 변수가 없어야 하는데 엄마는 아버지를 팽개치고 나가려 하니 신경이 쓰이고 화가 나는 것이다. 

엄마, 한자의 가출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바로 이거다. 원래 엄마의 자리라는 건 누가 완벽하게 대신할 수 없는 자리다. 그러므로 엄마가 없으면 어떻든 표가 나게 마련이고, 그로 인해 불편해지는 건 그 주변 사람들이다. 딸 시집보내는 심정이라며 엄마의 장기 휴가를 인정한 아버지도 당장에 자기 여름 잠옷을 못 찾겠다며 어린애처럼 화를 내고, 날벼락처럼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떨어진 며느리의 심사도 마냥 편할 수만은 없다. 그러니 엄마는 큰 결심을 해서 집을 나간다고 해도, 걸리는 게 한 두개가 아니다. 머릿속이 깨끗할 수만은 없다. 

자, 이제 관심사는 한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장기 휴가를 어떻게 잘 쓸 것인가에 쏠린다.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는 말이 있듯이 시간도 혼자서 쓸 줄 아는 사람이 쓴다. 수십년 동안 늘 가족들과 얽히고 설켜 살던 한자는 가끔 울려대는 전화벨 때문에 완전 독립은 힘들겠지만, 허락받고 오롯이 주어진 일년이란 시간을 잘 쓸 수 있을까. 맘대로 책을 읽다 잠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년을 그렇게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휴식이라는 게 작정하고 1년간 쭉 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다 컸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이 자기를 필요로 할 때, 행복을 느끼는 것도 엄마다. 가족, 결혼, 자식, 일상사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꿈을 품으면서도 틀이 깨지는 건 두려워하니, 엄마 역시 모순적인 존재다.

엄마도 지혜롭게 독립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엄마가 뿔났다는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얘들아, 니네는 날 비난하겠지만 엄마도 가출하고 싶을 때가 있단다. 그것도 미치도록..."  

한자 엄마에게 가출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살림살이과 자식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 자아를 찾는 것? 
그녀는 거창한 의미를 붙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냥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램뿐이다. 하기야 이유야 어찌 됐든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데 굳이 의미를 붙일 필요는 없다. 일 년이라는 세월이 그녀를 얼마나 변화시킬지, 일 년간의 휴가를 끝내고 원래의 엄마 역할로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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