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화점의 감독은 남녀간에 벌어지는 육체적인 사랑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고 싶었던 것일까. 남녀간의 육적인 사랑에 왕은 철저히 배신 당하고 만다. 이 영화의 주제는 왕과 호위대장 홍림, 그리고 왕후를 둘러싼 삼각관계가 아니다. 나는 이 영화의 주제가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인 왕의 슬픈 눈빛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한 곳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왕의 자리. 구중궁궐에 자리 잡은 왕의 심사는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왕은 국가의 운명을 걱정해야 하고 둘 곳 없이 허전한 자신의 마음도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많은 세월을 함께 하면서 우정이 애정으로 발전한 홍림과의 관계는 남녀간의 섹스 몇 번으로 허무하게 무너져버리고만다. 왕을 향한 신하로서의 충성심, 애정까지 포함한 왕과의 우정, 국모로서의 책임감은 남녀간의 격정적인 사랑 앞에선 모래성에 불과했고 다른 신하들은 왕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동료로서의 우정, 그리고 자신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쌍화점을 부르는 왕의 눈빛은 슬프다.
인간이 인간이어서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안위에 위협이 될 거라는 뻔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일을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일은 그만한 가치와 명분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 즉 그일은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닌 다수를 위한 대의 있는 일이어야 한단 뜻이다. 홍림대신 호위대장을 맡은 승기가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쓰는 얄팍한 술수는 인간의 육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남녀간의 사랑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사랑이 어떤 색깔을 띠고 있든 간에 사랑에 빠진 남녀는 상대방과 한 몸이 되고 싶어한다. 즉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절정의 순간에 두 사람은 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말은 여기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
홍림과 왕후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육체를 통해 서로를 알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분의 차이쯤은 중요하지 않다. 육체관계를 맺는데는 남녀라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서로를 향한 사모하는 마음이 서로를 갖고자 하는 욕망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수태라는 목적을 위한 합궁이 마음을 열게 했다. 통상적인 사랑방식의 역행이다. 육체의 열림이 마음의 열림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둘은 만나면 오직 육체적 관계 맺음에만 열중한다. 씨받이 여성과 나누는 형식적 정사가 연모의 마음으로 바뀌는 뜻밖의 상황이 영화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육체와 정신의 관계란 그렇게 칼로 자르듯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육체가 정신을 배제한 도구로만 쓰일 순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경우엔 그 정도로 단순치가 않다. 두 사람의 사이엔 여염집의 불임 남성이나 불임 여성이 아닌 임금님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불륜관계라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둘에게 허용된 정사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후사생산이라는 커다란 명분과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그 명분을 극히 개인적인 일로 만들어버렸다. 둘의 사회적 위치, 그리고 둘이 지녀야 할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생각했을 때,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임무를 망각하고 유치한 사랑놀음에 빠져버린 것이다. 임금이 저지른 죄가 있다면 홍림을 자신의 분신으로 착각한 것이다. 자신의 분신이 자신을 배신하리라고는 꿈에 생각하지 못 한 죄다. 자신이 스스로를 죽게 만든 덫을 만든 것을 한탄하기보다는 자신이 품고 살아왔던 연모의 허무함에 크게 상심했을 것이다. 정인이라 여겨왔던 자의 칼에 찔려 죽는 왕의 촉촉한 눈빛이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나는 이 영화의 백미를 쌍화점을 부르는 왕의 모습에서 찾고 싶다. 고전적인 악기의 음색과 왕의 곱고도 서글픈 눈빛, 그 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신하들. 노래는 부르는 임금의 모습이나, 아비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자식들처럼 천진하고 평화롭게 춤을 추는 그의 백성들의 겉모습은 무척 아름다워보이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거짓의 모습은 실재보다 아름답다. 그걸 알면서 부르는 왕의 노래는 슬프다. 그렇지만 아름답다. 그것은 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홍림의 가슴도 찢어질 듯 아프다. 하지만 결국 홍림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쪽을 택한다. 왕과 함께 자라면서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들, 그리고 왕의 가슴 속에 남겨진 홍림에 대한 순정 따위는 결국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쪽으로 영화는 결론짓는다. 자신을 정인으로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느냐는 말에 홍림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단 한번도 없었다고. 차라리 그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던 편이 나았다. 임금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관계가 아닌 연모였다. 왕은 자신이 품어왔던 짝사랑에 절망한다. 그리고 그 통증은 그의 가슴을 찌르는 칼날보다 더 날카롭다.
왕과 홍림과의 지나친 키스씬, 그리고 홍림과 왕후간의 현란한 섹스씬이 오히려 영화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 이 영화에 그렇게 다양한 체위의 섹스씬들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이 처한 상황에도 맞지 않다. 관객이 노골적인 정사씬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노골적이라는 말 자체가 평범해질만큼 요즘 세상은 감정부터 육체까지 모두 보여주고 사는 세상이니까. 그런 야한 씬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세상에 널렸다. 관객수가 아무리 절박해도 영화 분위기와 어긋나는 얄팍한 수단은 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중간 중간에 관객의 시선 끔에 영합하긴 했지만 쌍화점을 부르는 왕의 처연한 눈빛, 그 눈빛을 둘러싼 몽환적인 분위기, 그리고 순진한 임금님의 시선을 피해 이뤄지는 육체들의 현란한 향연을 통해 이어지는 긴장감, 임금의 유일한 낙이었던 홍림을 향한 순정이 모래성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허무함 등이 이 영화를 보는 맛이었다.
자신보다 더 훌륭한 말을 정인에게 하사하고 그가 말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면서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 자신과 홍림이 말을 타는 그림을 그렸다가 홍림이 자신도 활을 쏘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자, 두 사람 다 화살을 쏘는 모습으로 고쳐 그린 그림을 자신의 처소에 계속 두고 있는 모습이 가슴 한 구석을 시리게 한다. 결국 그 그림은 왕을 죽이려 온 홍림의 칼날에 잔인하게 반토막이 나고 만다. 그림 속의 모습처럼 두 사람이 말을 달리는 엔딩 씬 속에서 보이는 주진모의 수줍은 웃음, 그리고 그 씬에 깔려 나오는 그의 쌍화점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 감독이 무게를 뒀던 사랑은 어느쪽이었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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