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고통의 동반자 잠시 쉬어가는 이야기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많은 일들 중 가장 섬뜻한 일이라면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일이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최근에 만나지도 않았으며 앞으로도 만날 일이 별로 없지만 그저 어디에서 뭘 하고 사는지 아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관계들이 어디 한 둘이랴. 그 사람들이야 내 소식이 궁금하지 않겠지만 난 가끔씩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내 앞가림도 잘 하지 못 하고 살면서, 남들에게 그렇게 살가운 사람도 못 되면서 과거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쓸데없이 감상적이 되는 것은 나의 타고난 습성인 듯 싶다.


나는 어제 또 그런 소식을 접했다. 예전에 같이 영어를 공부했던 사람이었고 학원 강사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인터넷으로 확인했었는데 갑자기 고인이 돼 있었다.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한 여자의 남편이면서 두 아이의 아버지였는데, 너무 빨리 떠났다. 평균 수명이 80이 넘는 시대니까 아직도 살 날이 많이 남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다.


죽음이 아직까진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죽음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닌가보다. 그렇다고 해도 죽음을 의식하며 살고 싶진 않다.


난 지금까지 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걸 확인할 일이 없을 텐데. 왜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존재에 대한 상실감이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이다. 존재에서 부존재로 바뀌는 그 변화가 슬픈 것일 뿐이다. 상실은 늘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 침투한 변화가 주는 낯설음, 거기서 오는 당혹감 때문에 난 잠시 균형을 잃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결코 정지해있지 않다는 것을. 지금 내가 느끼지 못 하는 이 순간에도 뭔가가 없어지고 다시 생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런 현상 속에 하나가 될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말로만 듣던 친구가 찾아온 것처럼, 그리고 낯설지 않은 그 친구를 맞이하듯 그렇게 죽음이라는 변화를 맞이하자.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내가 알았던 누군가가 먼저 자리를 떴다고 해도.


지하철에 앉아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본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 과연 그럴까. 지금 이 순간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그리고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은 특별한 관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주는 고통, 인간으로서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우리는 모두 고통의 동반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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