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영화, 드라마 이야기


 캐릭터와 배우가 완전히 일치되는 율은 유명배우일 경우일수록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 배우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똥파리를 보면서 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캐릭터와 양익준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그건 좋은 현상일까. 아닐까. 그는 다른 영화에서도 그처럼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양익준은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캐릭터 자체였다. 연출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의 행동, 대사, 세팅들도 거기 크게 한 몫 한다. 카메라가 앞에 있다는 느낌을 완전히 배제한 것처럼 행동하는 그를 보면 눈이 마주칠까 겁이 날 정도다. 하지만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탄탄한 내러티브에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이 끊기지 않는다. 언어폭력과 육체폭력. 그의 언어폭력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폭력이 이해되는 순간이 온다. 양익준이 맡은 캐릭터, 상훈의 폭력은 또한 폭력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가정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노출시키는 순간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이 죽는 사고를 당한 상훈은 가정폭력을 사회폭력으로 연결시킨다. 남의 뒷처리를 해주는 용역업체에서 돈을 받고 사는 상훈이 가진 능력이라는 것은 거침 없는 폭력이다. 입으로 몸으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폭력은 보는 사람의 정신까지 마비시킨다.
 
 처음부터 꼬여버린 인생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폭력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모두가 피해자이다. 사회의 피해자들. 사회의 피해자는 가정의 피해자를 낳고 가정의 피해자인 아이들은 커서 다시 사회의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 자신이 살기 위해선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딜레마와 모순들을 똥파리는 잘 묘사하고 있다.

 증오와 환멸이 똥처럼 굳어버린 자신에게서 인간애를 발견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그 기적의 씨앗은 자신의 마음 속에 늘 묻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사랑받지 않으면, 그리고 사랑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부정하면서도 늘 갈구하는 것은 인간을 향한 사랑이다. 상훈의 아버지에 대한 지독한 증오 역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감정이다. 욕설과 폭력으로 아버지를 모욕하던 상훈은 아버지가 자살을 기도하자, 그 축 늘어진 몸을 들쳐없고 병원으로 뛴다.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는 자신의 감정 앞에 마침내 무릎을 꿇은 상훈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청신호이자 적신호다. 변화는 어떤 의미에선 죽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타왔던 물살이 거세면 거셀수록 돌아서기는 힘들다. 거스르는 순간 거침없는 물살은 자신의 존재를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상훈 역시 자신이 의존해왔던 폭력의 희생물이 된다. 상훈은 또 작은 상훈을 낳고 작은 상훈은 더 작은 상훈을 낳고 또 낳는다. 악의 순환고리는 깨지지 않고 바닥의 삶은 탈출구를 찾기 힘들다. 노점상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연희의 얼굴 표정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사회와 가정의 피해자였던 상훈은 이제 가해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엔딩 씬이다.

 가족은 증오와 분노의 원천이면서 또한 구원책이기도 한 극과 극의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다. 원인과 해답이 모두 그 안에 있는 걸 알지만 가정엔 독자적인 힘이 없다. 상훈의 가정사는 개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똥파리는 이런 가정과 사회의 흐름을 설득력 있게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동맥처럼 흐르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이 영화를 끝까지 지탱해주는 힘이며 영화를 본 후에도 뭔가를 봤다는 느낌을 주게 만드는 동력이다.   

 수십억을 쏟아부으면서 스펙터클만 강조하는 주류 상업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허전한 이유는 이런 데서 찾을 수 있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하는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가  독립영화의 성공 비결이다. 왁자지껄한 홍보가 아니라도 감독이나 배우의 파워 없이도, 워낭소리, 낮술, 똥파리, 이 영화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영화 내내 욕설을 쳐들으며 흠씬 두들겨 맞은 느낌을 받으면서 동일화되기 힘든 상훈이라는 캐릭터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살붙이 같은 느낌으로 바뀌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 숨결이 느껴지는 게 바로 영화의 리얼리티고 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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