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인데도 눈을 뗄 수 없는 영화- 해피 뻐스데이 영화, 드라마 이야기

굉장히 특이한 영화를 만났다. 게다가 한국영화다. 어떤 캐릭터도 범상치 않다. 하나같이 눈길을 잡아둔다. 근발달장애, 틱장애, 동성애자까지는 특별할 것이 없다해도 근친상간에 가족 살인공모까지 확대된다.

그 가운데 서갑숙과 김선영의 연기는 낱알갱이 같은 튀어오르는 캐릭터들을 어떤 형태의 그릇(가족)에 머물게 만든다. 그 형태마저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냥 정신분열자들의 집합체처럼 보였을 것이다.


언뜻 보면 막장의 극치 같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두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첫째,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형태에 대한 강력한 도발이면서도 동시에 가족의 틀을 끝까지 존중하는 양가성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 중심에 어머니가 있다. 아버지가 부재한 이 가정에서 어머니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동생의 여자를 빼앗아 사는 형에, 게이 동생에게 저주를 퍼붓는 누나에, 제멋대로 사는 가정에서 어머니의 권위가 중심이 되어 가정이 유지된다는 엄청난 괴리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진행은 자연스럽다.


 어머니로 분한 서갑숙의 연기가 극의 진행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고 있다. 그런 강력하면서도 포근한 어머니의 존재는 그들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부도덕하고 존경할 구석이라고는 없는 어머니지만 그녀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장애를 지닌 아들을 공모해서 살해한 후,  다른 두 아들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희가 없으면 어쩔뻔 했니."라고 자애롭게 감싸안을 땐 너무 달콤해서 상황을 착각할 정도다. 심지어 바로 직전에 그 아들에게 술에 취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라고 욕하던 어머니였다는 사실까지도 깜빡 잊을 정도다. 며느리인 김선영에게도 마찬가지다. "큰 아들 작은 아들이 돌려먹던 년이 내 며느리라니"라고 욕했던 게 언제냐 싶게 "너 같은 애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말할 땐 마음이 움직일 정도다. 동생과 사귀다가 형에게 강간을 당해 결혼하게 된 김선영이 "저를 며느리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했을 때 술이 깬 시어머니 서갑숙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고부간의 갈등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풀리지 않은 감정은 감정 대로 남아 있지만 그들은 화해를 해야만 한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런 척이라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상식을 뛰어넘을만큼 과장돼 있기는 하지만 이런  모습은 본질적으로는 평범한 가정과 다를바가 없으며 그런 식의 '가면 쓰기'에는 진정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분노하면서도 같은 처지에 있는 가족에게 느끼는 연민이 늘 함께 섞이게 마련이다.


둘째,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의 상처를 노출시키는 것은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주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상식적이라면 밥상이 뒤집히고 머리 끄댕이가 잡혔어야 할 상황이지만 이 집 식구들은 특이하게도 상대방이 상처를 드러낼 때 침묵한다. 지옥같은 집안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한쪽에서 품어낼 때 같이 품어내지 않는다. 양각과 양각이 부딪히면 바퀴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양각에 음각을 들이댄다. 그래서 이 형편없는 가족은 삐꺽 거리면서도 잘 돌아간다.

한 번 품어대고 난 뒤에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 또한 상대방을 비난할 수 없을만큼 형편없는 인간임을 수용하면서 상황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장애를 지니고 괴물이라 불리며 사람 구실을 전혀 할 수 없는 큰 아들을 죽이기로 공모한 뒤,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10분씩 큰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나오라고 한다. 그 동안 들어가기를 꺼려했던 가족들은 한 명씩 방에 들어가 자신만의 고통을 고백하거나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나온다. 우리 모두는 가족 앞에서 결코 누구도 떳떳할 수가 없다. 죄책감과 증오, 분노가 늘 함께 있다.


<해피 뻐스데이>는 가족이라는 괴물성과 연민을 동시에 보여주는 데 탁월했던 영화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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