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가치가 환산되나요... 리얼리? 잠시 쉬어가는 이야기

나도 한때 젊은 시절에는 그랬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이 가치있는 일임이 분명하다. 가치가 있으니 사람들이 돈을 쓰는 거 아닌가. 이번 달에 내가 이만큼 벌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때 정말 뿌듯한 기분을 나도 겪어봐서 안다. 돈을 벌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전업주부의 나와 현금이 통장에 입금되는 프리랜서로서의 나는 가치가 달랐다. 남편의 시선도 달라졌고, 친정 엄마의 시선도 확 달라졌다. 싱크대에 설겆이거리가 쌓이고 아이들 꼴이 말이 아니지만 그런 것쯤이야 돈을 버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충분히 용인이 됐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엄마의 가치는 더 하락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큰 애는 이미 머리가 커져서 경제 개념을 알게 됐기 때문에 일하면서 돈버는 엄마를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네 살 터울의 둘째 아이는 엄마가 왜 저런 힘든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집안 꼴은 점점 엉망이 돼갔고 나는 아이들 엄마들과 어울리는 것도 스트레스가 쌓여서 나가지 않았다. 엄마들의 대화는 내 관심사와 먼 것들이라 재미가 없었다. 아이들 교육에 열올리는 엄마들을 따라갈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애들 영어 학원에 갔다가 옆자리의 어떤 엄마가 우리 애는 만년 전교 2등이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여기 왔다는 말을 넘겨 듣고 짜증이 나서 자리를 떴다. 

  

  그냥 내가 잘하는 것을 하자라고 다둑여도 주변에서는 날 찔러댔다. 우연히 만난 대학 선배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잘 돼야 니가 성공하는 거야. 너만 잘돼면 무슨 소용이 있냐."라고 말했다. 학교 담임은 우리 아이에게 니 엄마가 혹시 계모 아니냐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요."라는 말도 선생님한테 직접 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여 뒷골이 묵직해질 무렵, 평범했던 큰 아이의 성적이 갑자기 최상위권으로 오르면서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리고 다들 입을 다물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뒤로는 뭔가 고액 과외를 하고 있었을 거라는 등의 헛소문도 돌았다. 과도한 학원 과제에 허덕이면서 진도를 못 따라가던 아이가 학원을 포기하고 혼자서 기초부터 시작해 꾸준히 공부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꾸준함에 당할 장사는 없다. 학원이 맞는 애가 따로 있다. 덕분에 나는 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들 교육은 엄마 몫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라 엄마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여기서 드는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아이의 성공은 엄마의 성공인가? 아이가 성공하면 엄마는 계속해서 행복한가? 그리고 성공의 기준은 단 한가지인가? 학벌과 직장이라는? 최고의 학벌과 직장을 가진 아이는 행복할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돈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학벌이 없어도 대기업이 아니라도 엄청난 수입을 올리면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벌이 훌륭해도 수입이 없으면 눈빛은 대번에 달라진다. 어떤 눈빛인지 얘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나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시작했다. 결혼했다고 해서 모든 여자가 가사와 육아에 적성이 맞진 않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한번 얽히고 보니 아무리 프리랜서라도 내 마음대로 일을 조절하기는 힘들었다. 스케줄에 끌려가야만 했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요구하는 것은 더 가혹해지고 스트레스는 그만큼 더 쌓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그 가치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행복도는 하락했고 심신이 피곤해지면서 가치도 수용할 수 없게 됐다. 나는 빡빡한 스케줄과 마감 공포에 시달리다가 다른 행복을 찾아 방향을 바꾸었다. (일을 그만 둔 지 십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마감일이 지났다고 소르라치게 놀라는 꿈을 꾼다.) 나는 정말 돈과 상관 없는 인문학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고 시도했다가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중단했던 공부다.  어리석은 결정일 수도 있지만 행복이나 가치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아프게 실감하는 사람들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영역인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가방끈이 아무리 길어져도 돈을 그만큼 벌지 못한다. 인문학이 밥을 먹여주기는 쉽지 않다.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것에 가치를 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쓰고도 돈을 환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멸시의 눈빛에도 초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세상의 주류 가치관에 맞서 꿋꿋하게 버티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일은 정말 정말 쉽지 않다. 원래 인간은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자신의 가치를 세울 수 있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유독 그런 사람들이 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꼭 돈으로 환산해서 가치를 따진다. 내가 어느 기관에서 예술치료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렇게 물었다. "전에 영상번역했을 때하고 예술치료하고 어떤 게 돈을 더 많이 버냐?" 예술치료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돈은 아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역동이다. 또 다른 분은 더 나이가 많은 분이었는데 이렇게 물었다. 내가 모 영화사에서 큐레이터를 한 학기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돈을 받는 일이 아니었다. 영화 후 시네토크를 진행하게 됐다고 영화표 사서 오라고 했더니 "큐레이터 하면 돈 많이 버냐?"라고 했다. 모 공모전에 선정돼 책을 냈다고 했더니 "수입이 짭짤하겠네."라고 했다. 내 대답은 이랬다. "참으로 순진하시네요." 그랬더니 상대방은 얼굴 표정이 갑작스레 굳어지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돈독이 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소소한 행복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수입으로 가치를 따지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이긴 하다. 머리를 여러 방향으로 굴리지 않아도 쉽게 판단할 수 있으니까. 

  흔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면 그게 제일 행복한 사람이 아니냐고 한다. 나도 동의하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러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대학생인 우리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돈을 벌고 나머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자신이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설사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 또한 계속해서 바뀐다는 것이 함정이다. 게다가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속 세속적 가치만 쫓아다니다간 인생도 피곤해지고 돈도 벌지 못한다. 

  

  결론이 나지 않는 이야기를 또 시작한 느낌이지만 이쯤에서 억지로 결론을 내리자면 인생을 살면서 여러 언덕을 넘을 때마다 행복과 나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의 가치와 행복감이 매일 매시간 달라지기도 한다. sns 댓글 한개에도 달라지니 기분이 확 달라지니 인간이란 얼마나 자기 확신이 없고 알팍한 존재인가. 자기보다 행복해보이는 사람을 보면 급 우울해지고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 일도 많으니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이고 기준이 없는 존재인가. 그러니 이런 인간이란 존재를 너무 믿지 말자. 그래서 이런 불확실한 인간이 절대적인 가치라고 믿는 돈의 가치도 너무 믿지 말자.  주변을 살펴보면 돈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는 넘친다. 


  나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이란 믿을 순 없어도 절대로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짝 거슬리는 인간들에게도 미소짓고 덕담을 해줄 수 있는 여유를 부린다. 나도 누군가에게 틀림없이 그런 재수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니 이해하고 불쌍하게 봐달라는 뜻이다. (물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인간은 안 만나는 게 최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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