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공주의 자살 시도-<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영화, 드라마 이야기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라는 영화를 참 흥미롭게 감상했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행복이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라는 영화에서 얼음공주라 불리는 여주인공은 자살을 시도한다. 그녀에게 자살이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왜냐하면 얼음공주라고 불릴 만큼 그녀는 감정이 발달되지 않았다. 사회성 또한 제로다. 타인은 그냥 귀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녀는 남들과 다르다. 로보트에 가까울 만큼 인간적인 구석이 전혀 없다. 대신 로보트 답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 기억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탓에 모든 것을 세세히 기억하는 능력이다.  대신 그녀는 신체적인 감각에서 오는 즐거움과 정서적인 공감을 느껴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일을 처리할 때도 조그마한 인간적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남들과 커피 마시는 일도 불편하다. 


  그런 그녀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길 원하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다.  그 이유가 참으로 비현실적이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사람이 각각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는데 그 꿈이 똑같다는 믿기 힘든 사실 때문이다. 두 사람이외에는 아무도 진실을 믿어주기 힘들고 증명도 불가능한 일이다.

   도축장이라는 살벌한 환경만큼 차갑고 냉정한 그녀는 타인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차가운 로보트처럼 자신의 일을 철저하게 수행할 뿐이다. 그런데 도축장에서 발정제가 도난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모든 직원들이 심리 평가를 받게 된다. 꿈 분석도 일부분인데 그 과정에서 재무이사와 꾸는 꿈이 같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심리사는 미리 말을 맞춰서 자신을 엿 먹이려는 수작이라고 열 받는다. 두 사람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줄 방법이 없으며 두 사람은 증명에 관심도 없다. 아무 의미도 없던 두 사람의 관계가 특별해졌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두 사람은 그 사건 이후로 매일 아침 출근한 뒤에 밤새 꾸었던 자신들의 꿈을 맞춰보면서 행복해 한다.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두 사람은 타인들에게 결코 호의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만의 섬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현실에는 없는 다리가 꿈을 꿀 때마다 생긴다. 그런데 무의식 속에서만 존재했던 다리가 실제로 생긴 셈이다. 얼음공주 마리어는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기 때문이며 그동안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리어가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감정도 느껴보고 싶고 성적 쾌감도 느끼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잘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상담을 받아왔지만 효과는 없다. 그렇지만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남자가 마지막 희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포르노 비디오를 보고 털인형을 사서 그 촉감을 느껴보려고 애쓴다. 

   나이가 많고 왼쪽 팔을 쓰지 못하는 엔드레는 현실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한다. 그리고 마리어는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그녀의 얼굴이 창백한 인형처럼 변화가 없어서 더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자살을 막은 것은 남자의 전화다. 전화벨이 울리자 얼음 공주의 위신도 잊은 채 그녀는 손목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욕조에서 뛰쳐나와 전화를 받는다. 불가능해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그 이후로 현실이 된다.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한 식탁에서 아침을 먹는다는 것이 바로 현실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얼음공주의 불감증은 여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태도 남아있다. 잠자리에서도 마리어는 성적 자극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고픈 욕망이 생겼으며 현실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 앞으로 살아갈 희망을 준다. 

  

  오프닝 씬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도축장으로 들어오는 순진한 소의 눈망울이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생길만큼 소의 눈망울은 천진하다. 그 다음에 소의 부위들을 절단하는 장면을 불필요할만큼 자세하게 보여준다. 도축이 끝나고 피바다가 된 바닥을 물청소하는 모습도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도입부에서 회사의 재무이사인 엔드레는 신입사원을 면접하는 중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정확한 대사는 생각나지 않지만 "도축당하는 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내용의 질문이었다. 껄렁껄렁한 사내는 "뭐 아무 생각도 안 합니다. 동정 이런 감정은 생기지 않으니 걱정마세요. 피를 봐도 별 느낌 없이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사내는 엔드레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엔드레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마음이라면 오래 버틸 수 없을 거야."라고. 상식을 뛰어넘는 반응이다. 소를 불쌍하게 생각한다면 도리어 도축장에서 근무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일 테니까. 소를 도축하는 것이 직업이라면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소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순한 생각의 오류일 수 있다. 필요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소에게 갖는 최소한의 감정이 동물에게는 위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관계를 외면하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그렇게 될 때 인류에게도 희망이 없다. 그것은 종말을 뜻한다.'라고 영화는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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