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드디어 그 유명한 '식객'을 봤다.
유명한 원작을 영화화했을 때, 반응은 대개 실망쪽이지만 난 원작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 위험성은 적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good'이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일단은 지루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화려한 화보의 요리책처럼 후딱 후딱 지나가버리는 다양한 색상의 요리들에 대해선 자세히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요리에 관한 영화지만 내 관심은 거기서 약간 빗나간다.
난 요리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다. 미각도 둔한 편이다. 배고프면 뭐든 다 맛있다는 식의 지극히 미개한 미각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오락 프로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0대부터 70대까지 주부들이 집에 들어가기 싫은 이유 1위가 밥하기가 싫을 때였다.
어쩌면 다들 내 마음 같은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식객이란 영화를 난 다른 이유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봤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성찬이라는 역을 맡은 배우 김강우의 얼굴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각도'와 '조명 위치'에 따라 이렇게 달라보이는 얼굴은 처음이다.
영화배우치곤 별로 조각처럼 생기지 않았다. 카리스마도 있어보이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다.
각도에 따라서 단정하고 단아해보이는 얼굴이지만 어떻게 보면 동일인물인가 싶게 못 생겨 보이기도 하다.
매력이라면 쌍커풀이 지지 않았지만 선이 위로 살짝 잡히는 눈... 선하고 정직하게 보이는 데 일조한다.
어쨌던 시골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 직접 고추를 따고 가마솥에 밥을 짓고 빈대떡을 부치고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는 모습이 정겹고 부럽다. 소박한 요리들을 능숙하게 만드는 모습이 참 편안한 느낌을 준다.
라이벌 관계인 봉주라는 인물이 너무 대조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사실 좀 작위적이다. 어찌 선한 사람은 늘 선한 얼굴을 하고 있고 악인은 늘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 있는가. 현실에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던데.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건 이 영화의 뿌리가 되는 스토리 때문이었다.
대령숙수가 순종에게 바쳤다는 쇠고기탕 이야기.
이 영화에서 순종은 그 국을 마시고 눈물을 흘린다.
나라를 빼앗긴 임금은 시체나 다름 없다. 순종의 마음을 읽은 대령 숙수는 조선인의 강한 기질을 상징적으로 담은 육개장을 끓여내서 순종의 가슴에 갇힌 피멍을 밖으로 흘러나오게 해준 것이다.
그런 중요한 사실을 식민지를 점령했던 일본 고관의 자손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는 설정 역시 약간 설득력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임금을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 깊이 사모했던 신하의 마음이 느껴져 코 끝이 찡할 정도였다.
순종이 승하하자, 대령숙수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최고의 요리 만들기를 강요하는 일본인들 앞에서 자신의 손목을 잘라 굳은 의지를 보인다.
그에게 음식은 자신의 생명이나 정조와 같은 것이었나보다.
지금까지 나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였을까.
음식을 알약으로 대신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주부들이 가끔 있다. 그런 주부들을 비난할 순 없다.
1년 365일, 명절, 잔치, 그리고 야식까지 요구하는 뻔뻔스런 남자들을 생각하면 사랑이 담긴 음식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영화 한 편 봤다고 해서 음식만들기를 싫어하는 내가 저녁식사를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앞치마를 휘날리듯 두를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겠지만 사모하는 이의 입으로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 그 마음을 나도 느껴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마지막에 일본인이 나타나 수수께기를 풀듯 모든 일을 설명해주는 거라든가,
성찬을 사위감으로 점찍어놨던 식당 아줌마의 딸이 시합내내 성찬을 지지했던 여기자였다는 거하며,
성찬 팀의 보조가 자신의 군대 상사였다는 이유로 은근히 애정을 품는 김상호를 끝까지 놓지 않는 봉주의 이해할 수 없는 심사하며,
작위적인 느낌을 받게 만드는 일부 장면들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음식을 사랑하는 마음, 아니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 2007/11/07 17:03
- agnes2007.egloos.com/967385
- 덧글수 : 3
태그 : 식객



덧글
Andrea 2007/11/07 18:34 # 답글
보고싶군요 식객...분량이 워낙 많은 만화여서..에피소드 몇 개나 다뤘을지 궁금해집니다^^
marie 2007/11/07 21:34 # 답글
이영화 결말이 만화영화 '라따뚜이'하고도 통하더군요. 가장 소박한 음식에 감동하는 사람들. 이건 맘에 들어요.
아그네스 2007/11/07 23:50 # 답글
블로그 만든 뒤로 처음 덧글 달아주신 두분께 감사드려요.^^ 가장 맛있는 음식이란 아직 채 오염되지 않은 어린 혀에 닿았던 엄마의 음식이겠죠... 힘들 때 늘 생각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