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 두 글자 사이에 쉼표 하나가 들어간 제목만큼이나 심플한 영화다. 하지만 러닝타임은 두 시간 반이 넘는다. 여자 스파이가 주인공인 영화인데도 피가 바짝 마를만한 긴장감도 머리를 쥐어 뜯을만큼 대단한 갈등도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내게 '무삭제'란 선입감과 기대감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무삭제란 감독이 의도했던 그대로의 완전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 봤던 실망스런 영화들과는 달리 이런 농도 짙은 정사씬이 담긴 영화가 검열을 통과했다는 게 기특하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리차드 기어를 스타로 만든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은밀한 부분을 치졸하게 가려서 영화를 망쳐놨던 악몽에서 벗어나는 날이었다. 중국에서는 정사씬이 30분이나 잘려 나갔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그 부분에선 참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결말 직전 부분을 먼저 보여주고나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지난 이야기들을 설명해준 다음 다시 현재와 이어 붙이는 식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뭐니뭐니해도 정사씬이다. 꽤 오래 계속 됐다. 마치 남의 침실을 부정하게 엿보는 듯한 죄책감이 들만큼 적나라하다.
더군다나 우리와 용모가 비슷한 동양인들의 힘겨운 베드씬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
그리고 그 와중에 여러 생각이 교차하게 만들었다.
몸은 뒤엉켜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반신반의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조국을 위해 일한다는 큰 명분으로 모든 걸 희생시킬 수 있을 만큼 순수한 나이에 섣부르게 뛰어든 첩자 생활.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
그리고 늘 위험으로 둘러싸인 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회한 적장의 쓰릴만큼 고독한 얼굴. 두 사람의 정사씬 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담겨져 있다. 노골적인 만큼이나 두 사람의 깊은 상처들을 밖으로 까뒤집어 보여주는 듯하다. 뜨거운 정사는 두 사람에겐 천국일 수도 지옥일 수도 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첩자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알 큰 화려한 다이어몬드 반지를 보는 첩자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결국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녀의 마음은 극적으로 흔들린다. 그 순간 그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국이란 명분으로 자신의 모든 걸 희생했지만 그녀를 진정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자기 편에는 없었다. 그녀 자신은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택했다. 남자의 한 마디에 혹은 행동에 자신을 버릴 수도, 오뉴월의 서리 같은 한을 품을 수도 있는 특이한 존재가 바로 여자다.
그러나 남자는 과연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삭막한 환경 속에서 잠깐 쏘이려던 햇볕 정도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남자가 자신을 진정 사랑했는지는 여자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순간만이라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그 마음이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들만큼 중요했던 게 아닐까.
어쨌거나 나이가 몇이 됐던 아직 애띠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탕웨이란 여배우가 참 대단해 보인다. 양조위에게도 역시 쉽지 않았던 노출이었을 것 같다. 스탭이나 배우들에게 참 지옥과도 같은 촬영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격랑과 같은 심정, 상황이 그 시퀀스만으로도 느껴지는 영화였다.



덧글
spacewind 2007/11/10 01:22 # 답글
보고싶어지네요. 베니스에서 대상도 탔다는데-
smirea 2007/12/29 23:40 # 삭제 답글
정말 대단했어요. 두 배우.
검은괭이2 2009/04/27 19:40 # 삭제 답글
이 영화 보면서 마지막 장면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았어요... 눈빛 연기와 그냥 맺혀서 흐르지는 않는 눈물....... ㅎㅎ